우리나라의 건국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정한 국경일. 즉, 기원전 2333년에 단군이 왕검성에 도읍을 정하고나라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짓고 즉위한 날로, 10월 3일이라정했다고 한다.이로인해, 개천절에 단군신화 외에도 어려운 시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 힘썼던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는데요, 가정에서는 태극기 게양으로감사한 마음으로 전해보길바랍니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一然)이 단군신화에 나오는 조선(朝鮮)을 위만조선(衛滿朝鮮)과 구분하려는 의도에서 ‘고조선’이란 명칭을 처음 사용하였고, 그 뒤에는 이성계(李成桂)가 세운 조선과 구별하기 위해서 이 용어가 널리 쓰였다. 지금은 단군이 건국한 조선과 위만조선을 포괄하여 고조선이라고 부른다. 고조선의 건국시기는 기원전 2333년으로 전한다.
고조선이 한의 대군을 맞아 약 1년 동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고조선의 철기문화와 이를 기반으로 한 군사력이 막강하였기 때문이었다. 고조선 후기에는 철기가 한층 더 보급되고, 이에 따라 농업과 수공업이 더욱 발전하였고, 대외교역도 확대되어 나갔다. 이를 바탕으로 고조선은 강력한 정치적 통합을 추진하였지만, 기본적으로 여러 세력의 연합적 성격을 극복하지는 못하였다. 각 지배집단은 여전히 독자적인 세력기반을 보유하고 있었고, 고조선 정권의 구심력이 약화되면 언제든지 중앙정권으로부터 쉽게 이탈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고조선 말기 지배층의 분열도 그러한 성격에 말미암은 바가 컸다.
지배층 사이의 취약한 결속력은 고조선 멸망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고조선 사회에 대해서는 기록이 전하지 않아 자세하게 알 수 없으나, 지금 전하는 8조 법을 통해 볼 때 계급의 분화가 상당히 진전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유재산제·신분제가 존재한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단군의 통치 권력, 1500년간 이어지다
'신화'속에서단군은 1500년까지 살다가 산속으로들어가서 신선이 되었다고 합니다. 즉,단군이 한명이고, 그 한명이 1500년을 살았으면 당연히 말도 안되죠, 여기서 단군은 한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통치자의 직위명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요, 대통령이나 장관 같은 직책이라고 해두면 좋을거같습니다. 그러니 , 1500년 동안 단군이 살았다는 애기는 여러 명의 '단군' 직위 통치자가 1500년 동안 통치 권력을 이어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제단군 신화가 아니라 단군 이야기라고 하는게 맞는거같습니다.
생각 넓히기 민족의식을 억누르기 위해 단군을 죽이다
일제강점기 초대 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다케는 이런말을 남겼습니다.
"조선인에게 일본 혼을 심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고 조선인의 민족적 반항심이 타오르게 된다면, 이는 큰일이므로 영구적이며, 근본적인 사업이 필요하다. 이것이 곧, 조선의심리 연구이며 역사 연구다!
근데 모든 책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조건을 세웁니다. 바로 ‘단군조선’에 대한 기록을 담은 책을 없애라는 거였죠. 단군은 우리 민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구심점이잖아요. 일본 입장에선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죠. 놀라지 마세요! 무려 20만 권의 역사책이 이때 사라지게 됩니다(대한민국 수험생이 60만 명이라는 걸 생각했을 때 3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죠!). 그러니 우리에게 남은 자료는 일연의 『삼국유사』에 실린 내용 정도밖에 없어 연구에 어려움을 겪는 것입니다.
개천절은 대한민국 5대 국경일!